티스토리 툴바


아이에게 쓰는 편지

2011/12/31 21:02 | Posted by sunflo

환희에게,

 

환희야, 네가 세상에 나올 날이 정말 며칠 남지 않았구나. 예정일이 다가올수록 점점 더 네가 보고 싶어진다. 아빠와 엄마는 매일 환희를 생각하며,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단다. 오늘도 배를 콩콩 두드리며, ‘환희야, 잘 있지? 사랑해.’ 하고 말을 걸었어. 반응은 없었지만, 아빠와 엄마가 보내준 따뜻한 기운을 환희도 느꼈을 거라고 생각하며 우리는 함께 웃었단다. 환희를 생각만 하고 있어도 얼굴에는 미소가 지어져. 우리에게 행복을 주는 네가 곧 우리 곁에 온다는 것이 아직 믿겨지지 않아.

 

엄마는 요 몇 달 환희를 생각하며 매일 글을 썼어. 글을 쓰는 동안 환희는 엄마 뱃속에서 춤을 추듯 움직였는데, 엄마의 마음을 읽은 걸까? 엄마는 글을 쓰는 동안 참 행복했단다. 환희를 많이 사랑해주고, 아껴줄 수 있는 엄마를 상상하고, 환희가 행복한 사람으로 크는 상상을 하고, 환희에게 부끄럽지 않은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는 상상을 하면서 매일매일이 행복했어. 꼭 그런 엄마가 되고 싶어. 엄마가 쓴 글들, 곁에 두고 자주 보면서 잊지 않을게.    

 

환희가 나이가 들고, 글을 읽을 수 있게 된다면 엄마의 글, , 다짐들을 읽게 되겠지? 그런데 글을 쓰면서 언젠가 환희가 이 글을 보고, 엄마는 왜 이렇게 하겠다고 해놓고 하지 못하냐고 얘기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들었어. 그 때 나는 네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 했단다.

환희야, 엄마는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 사실 허점투성이야. 실수도 많이 하고, 부족한 것도 많아. 어쩌면 나도 모르게 환희에게 상처주기도 하고, 아프게 할지도 몰라. 정말 엄마로서, 아내로서, 사회인으로서 다 잘하고 싶은데,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날도 있을지 몰라. 그렇게 엄마가 흔들릴 때면 환희가 곁에서 이해하고, 도와줄 수 있겠니?

그 때는 환희에게 사랑이 필요하듯이, 엄마에게도 사랑이 필요한 때일 꺼야. 환희가 엄마, 괜찮아요’, ‘엄마, 힘내요하면 정말 다 괜찮아지고, 힘도 막 솟아날 거야. 환희가 작은 손으로 엄마 손을 잡아주고, 안아주면 힘들고 아팠던 마음도 다 씻겨져 없어질 거야. 환희야, 잠시만 그렇게 이해해주렴. 잠시면 된단다. 엄마가 마음을 다 잡고, 다시 일어서는데 오래 걸리지 않을 꺼야. 환희가 곁에 있고, 아빠도 곁에 있으니까 엄마 금방 일어설 수 있을 거야.  

 

환희야, 엄마가 네게 부탁하고 싶은 것 한가지가 있어. 우리, 사랑하며 살자. 엄마도 열심히 사랑하며 살게. 가족도 사랑하고, 친구도 사랑하고, 삶도 사랑하면서 그렇게 살자. 서로의 부족한 것은 채워주고, 도와주고, 배려하면서 살자꾸나. 삶은 긴 듯 하지만, 또 짧기도 하단다. 우리가 함께 하는 시간 동안 충분히 사랑하고, 행복하고, 많이 웃으면서 살자. 엄마의 바램은 이것뿐이란다.

 

환희야, 사랑한다. 그리고 고맙다. 

 

  2011 10 26. 엄마가.


#1. 일과 육아,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었다

 

예전에는 커리어가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을 두려워했다. 삶에서 남들보다 늦게 가본적이 없었다. 마치 규격화된 듯, 표준적인 삶을 살았다. 제 때 졸업하고, 제 때 취직하면서 같은 나이의 친구들보다 같거나, 조금 빠르게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일에 대한 욕심도 없지 않았기에 회사 생활도 잘 하고 싶었다. 일도 배우고, 인정도 받으며 성장해가고 싶었다.

그런데 아이를 갖고 나자 상황은 달라졌다. 일도 중요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나의 사회적 성공보다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하게 느껴졌다. 일이야 천천히 해도 되지만, 아이가 어릴 때 잘 돌보지 못하면 불안하고, 방황하는 사회인으로 크게 될까 걱정되었다. 모성애인지, 엄마로서의 책임감일지 모르는 감정이 나를 사로잡았다. 아이를 갖고 처음으로 커리어가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뱃속에서 커가는 동안 나의 모성애는 더 많이 자라났다. 나는 아이의 엄마이고 싶었고, 아이가 사회를 살아가는데 있어 정서적으로 안정적일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어도 2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2년은 자신을 길러준 사람과 애착을 형성하는 시기라, 이 때 아이의 육아 환경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회사를 다니며 쓸 수 있는 휴직 기간은 출산 휴가 3개월, 육아 휴직 1년이었고, 그 기간이 내게는 짧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아이를 2년 동안 키운 후, 보육원에 보내면서 여전히 직장 생활을 잘 할 수 있을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회사에 보육 시설이 함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현재 국내에 그런 사업장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내가 다닌 회사는 직원수가 작아 그렇게까지 하기는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이를 키우고, 엄마가 되고 싶으면 회사를 그만 두는 수 밖에 없는 걸까 하는 생각에 몇 날 며칠을 고민에 빠졌다.

단순히 회사를 관두고 전업주부가 되는 것은 내게 답이 될 수 없었다. 일을 관두고, 꿈을 잃은 엄마가 되어 살고 싶지 않았다. 사회인으로서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다. 남들보다 천천히 가더라도 꿈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어떤 분은 육아랑 일을 다 잘 해낼 수는 없다고, 하나는 포기해야 할 것이라 얘기했다. 그것이 현실이라며. 둘 다 너무 소중한데,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 답답하고, 슬펐다. 이렇게 현실에 무릎 꿇을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다. , 해내고 싶었다. 아이도 잘 키우고, 내 일도 손에서 놓지 않으며 꿈을 향해 계속 달려가고 싶었다.

 

#2. 글을 쓰기 시작하다

 

나에게는 특별한 재능이 없었다. 재능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찾지 못했다. 학생 때 특기를 쓰는 칸에 공부라고 쓴 적이 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부끄럽다. 그렇다고 진짜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잘 알지 못했다. 공부가 좋았으면 계속 공부를 했으면 되었을 텐데, 현실과 동떨어져 논문만 읽는 것은 뜬구름 잡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음에 와 닿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회사 생활을 시작했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도 진정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은 계속 되었다. 그러다가 평생 사회에 도움이 되는 연구를 하고,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며 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는 일은 언제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잘 쓰지는 못했지만, 글을 쓰고 있는 동안은 늘 행복했다. 말주변이 없어 말을 하다 보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글은 늘 생각할 여유를 주었고,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있게끔 해주었다. 소설가가 되지는 못하겠지만, 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을 쓴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았다.

막연했던 꿈을 처음으로 실천한 것은 아이를 갖은 후였다. ‘엄마의 꿈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엄마가 되면서 가졌던 불안했던 감정을 뒤로하고, 긍정적으로 엄마의 역할을 이루어가는 모습을 담아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엄마가 되면 힘든 일도 많지만, 아이를 갖기 전에 먹었던 마음들을 떠올리며 다시 힘을 내라고 엄마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엄마라는 주제로 글을 쓰게 될지는 생각하지 못했었지만, 사람들이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는 글이라는 생각에 매일 행복하게 글을 썼다.

생애 첫 책은 내가 사회에 홀로 설 수 있는 기반이 되어 주었다. 책을 통해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많은 엄마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면서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였다. 아이를 행복한 사람으로 키우고 싶은 엄마들의 마음은 다 똑같았다. 아이도, 엄마도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 사람들과 함께 찾아갔다.

이후에도 나의 글쓰기는 계속 되었다. 사회에 긍정적인 가치를 줄 수 있다는 판단이 들면 나는 책을 구상하고, 글을 썼다. 아이를 키우면서 느낀 자연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도 했고, 기업의 사회적 가치와 사회적 기업에 관련된 글을 쓰기도 했다.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사회의 긍정적인 면들을 보기 시작했고, 변화에 동참하기도 했다. 글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고마운 도구였다.

글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글 솜씨가 없다 스스로 판단하고 포기했다면, 경험하지 못했을 세상이었다. 글을 쓸 때마다 연금술사의 한 글귀를 떠올렸다.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매번 간절한 마음으로, 진심을 담아 글을 썼다. 새롭게 접하는 세상은 늘 설레였고, 내 삶의 에너지가 되었다. 나는 계속 글을 쓴다. 좋은 향기가 나는 글이다. 글을 쓸수록 문장은 더 매끄럽고, 자연스러워지며, 삶의 경험이 진하게 우러나온다. 나이가 들어서도, 유연한 사고로 삶의 아름다운 변화를 꿈꾸며 글쓰기를 계속 하고 싶다. 

 

#3. 육아와 일을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다

 

아이가 3살이 되던 해에는 육아와 일을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아이의 육아 시설은 사무실과 가까운 곳에 위치했다. 나는 아이와 함께 출근하고, 퇴근했다. 육아 시설이 가까운 곳에 있었기에 행사가 있거나, 아이가 아플 때는 바로 달려갈 수 있었다. 아이는 자연과 함께 하는 교육을 받았고, 건강한 음식들을 먹으며 밝고 씩씩하게 자랐다.

사무실은 아이를 키우면서 일을 하고자 하는 엄마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엄마들은 모두 나처럼 아이와 함께 출퇴근을 하였다. 각자 할 수 있는 일이 달랐기에 개인 사업을 하듯 일을 했지만, 서로의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도움을 주며 각자의 꿈을 이루어 갔다. 교육, 심리, 경영, 쇼핑몰, 요가 등등 다양한 분야의 일들이 한 공간에서 이루어졌다. 30대 엄마들이 아이를 키우면서도 일에 대한 감각을 잃지 않고, 꾸준히 성취를 이룰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나는 아이를 생각하며 종종 시간을 내어 자연 교육에 대한 연구를 했고, 대부분은 기업의 사회적 가치와 사회적 기업에 대한 연구로 시간을 보냈다. 27살 때, ‘세상을 바꾸는 대안 기업가 80이라는 책을 읽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다. 기업의 목적은 이윤 추구라고 열심히 배웠는데, 사회를 위한 기업, 지구와 인간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는 기업들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리고 그런 기업들이 많이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마 그 때부터 좀 더 시간이 흐르면 사회적 기업을 돕고, 홍보하는 활동들을 할 것이라 다짐했던 것 같다.

나의 30,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밝고, 건강하게 자라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었다. 나는 아이를 키우는 틈틈이 일을 하며, 사회에 대한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었다.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을 하는 시간은 회사를 다닐 때 보다 길지 않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그 시간이 소중했고, 행복했다. 나의 40대부터 사회적 기업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글도 쓰고, 사회적 기업들에 대한 컨설팅 및 홍보 활동도 하면서 사회에 긍정적인 가치를 실현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뿌듯했다. 아이들도 사회 활동을 열심히 하는 나를 응원해 주었고, 엄마가 자랑스럽다고 얘기해주었다.

 

#4. 꿈을 이루어가는 길에 꽃이 피다

 

매 해마다 벽에 나의 꿈을 걸어, 그 꿈들이 이루어지는 상상을 하며 살아왔다. 상상을 할 때면 얼굴에는 미소가 한가득 피어났고, 어떤 때는 상상만으로도 너무 행복해 눈물이 나기도 했다. 마치 그 꿈이 진짜로 이루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상상 속의 나는 삶에 감사하고, 또 감사해했다. 마음이 게을러 이루지 못한 계획도 있었지만, 한 해를 돌아보면 신기하게도 간절히 원했던 일들이 이루어져 있었다. 마치 집 앞마당에 심어 놓은 씨앗들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듯이 꿈이 현실 속에서 아름답게 피어났다. 

아이를 키우고, 일을 하는 것도 그랬다. 힘든 고비들도 있었지만, 한 고개 넘을 때마다 아이를 보며 힘을 내고, 꿈을 생각하며 힘을 냈다. 정말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랬고, 이루어질 수 있도록 시도하고, 또 시도했다. 아이와 일에 대한 사랑이 나를 지치지 않고 달릴 수 있게 해 주었다.

이제 내 나이 쉰이다. 하지만 나의 마음은 여전히 꿈과 희망으로 반짝거린다. 늦은 때란 없다. 지금도 새로운 일을 시작할 열정과 에너지가 충만하다. 꿈은 나를 숨쉬게 하고, 나를 행복하게 한다. 마음처럼 잘 되지 않아도 괜찮다. 매일매일 삶에 도전할 수 있다는 것, 실패와 성공을 경험하며 성장해갈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 삶이 감사하다.

 

엄마는 결혼 후 아버지를 도와 평생 석항이라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가게 일을 했다. 아침 7시에 가게 문을 여는 것으로 시작하여, 1층인 가게와 2층인 집을 왔다갔다하며 밤 늦게까지 가게 일과 집안일을 병행하였다. 엄마와 아버지는 자식들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하여 쉬는 날도 없이 바쁘게, 그리고 열심히 사셨다. 작은 마을, 좁은 가게, 매일 반복되는 일상, 어쩌면 그 생활이 불만스럽게 느껴질지도 몰랐지만, 엄마는 불평이 없었다. 그렇게 반복되는 시골 어느 작은 가게에서의 생활은 지속되었다.

그러다가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었을 즈음이다. 어느 날 엄마가 가족들에게 사진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문화예술회관에서 주부들을 위한 사진 교실을 여는데, 일주일에 한번씩 가서 배울 수 있단다. 아버지는 가게 일이 바쁜데 취미 생활을 하겠다는 엄마를 못마땅해 하셨지만, 무엇인가 배우고 싶어했던 엄마의 마음을 꺾지는 못했다. 엄마는 서랍장 한 켠에 있던 아버지의 낡은 수동카메라를 꺼내와 사진 교실에 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 때 그렇게 열정적이고, 생기가 도는 엄마의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엄마는 사진 배우는 것을 매우 즐거워했고, 나와 동생들을 모델 삼아 집 근처에서, 학교에서, 집 뒤 둑길에서 연실 사진을 찍었다. 매번 모델 노릇을 해야 했던 나와 동생들은 귀찮아하기도 했지만, 그런 엄마가 싫지 않았다. 겉으로는 귀찮아해도, 속으로는 엄마가 사진 찍는 것을 열심히 응원했다. 가게 일과 집안 일에만 파묻혀 있다가, 자신이 좋아하는 무엇인가에 빠져서 열심히 하는 엄마가 멋있어 보였다. 사진 교실 선생님이 사진을 잘 찍는다고 칭찬해 준 날이면 엄마의 얼굴에는 미소가 피어났다.

그러나 엄마가 사진 배우는 것은 오래가지 못했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시간을 빼서 여기저기 돌아다녀야 했는데, 가게일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매주 영월에 나가 사진을 배우던 엄마가 참 행복해 보였었는데,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버린 엄마의 모습에 내가 괜히 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엄마는 괜찮다고 했다. 기본적으로 사진 찍는 방법은 다 배웠고, 가게가 여유 있을 때 사진 찍으러 나가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이후에는 현실에 치여 여유롭게 사진 찍을 시간을 갖지 못했다. 그 낡은 수동 카메라는 아주 가끔 엄마 손에 들려졌다. 내가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는 동안에도 엄마는 쉼 없이 돌아가는 가게일과 집안 일로 또 다른 꿈은 꾸지 못하는 듯 했다.

 

엄마가 다시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은 내가 대학원에 다닐 즈음이었다. 엄마는 문화예술회관을 통해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혹시 예전처럼 또 배우다 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번에는 좀 다른 것 같았다. 방 한 켠은 화실이 되었고, 엄마는 집안 일을 하는 틈틈이 시간을 내어 그림을 그렸다. 원래 미술에 소질이 있었던 것인지 참 신기하게도 빨리 배웠다. 고등학교 때 미술반이었고,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었다고 얘기한 적은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잘 그릴 줄은 생각하지 못했었다. 20년을 넘게 같이 살면서, 엄마에게 미술적 재능이 있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것이다.

엄마의 삶에 다시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내 마음도 두근두근했다. 예쁜 꽃들이 화폭에서 생명력을 찾았고, 폭포수가 내 가슴 위로 시원하게 떨어지는 듯 했다. 어떤 그림은 나를 청정하고 푸르른 숲으로 데려갔고, 어떤 그림은 나무가 켜켜이 쌓인 시골의 어느 집 뒷마당으로 데려갔다. 분홍빛 모란꽃은 희망을 이야기하는 듯 하고, 은은한 노란빛의 초롱꽃은 겸손을 이야기하는 듯 했다. 매 작품이 너무 멋있었다. 엄마의 손이 마술사의 손이 된 것 같았다. 물론 세상에는 멋진 그림들이 많지만, 엄마의 그림 속에는 엄마의 열정과 힘이 담겨 있어 좋았다.

엄마는 꿈 속에서도 그림 그리는 꿈을 꾼다고 했다.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며. 가게를 보면서도 그림 속 꽃에 어떤 색을 칠하면 좋을지를 상상한다고 했다. 그림을 그릴 때면 몸에 희열이 느껴지고, 에너지가 생긴다고 했다. 가게 일을 마치고, 집으로 올라와 저녁 늦게 30, 또는 1시간씩 그림을 그리는 시간을 소중히 생각했다. 다른 일들로 피곤한 날에도, 그림 그리는 것은 피곤하지 않다고 했다. 그림 그리는 엄마가 참 행복해 보였다.

4, 5년 엄마의 그림 그리기는 계속 되었다. 엄마의 이름을 걸고 대회에 나가기도 했고, 작지만 상도 탔다. 엄마의 작품은 늘어났고, 실력도 늘어났다. 나는 엄마를 열렬히 응원하였다. 엄마의 작품을 볼 때마다 진심으로 감동하여 칭찬해주었고, 멋있다고 이야기해주었다. 그림을 칭찬할 때 엄마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나는 나이가 들면 엄마에게 갤러리를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다. 엄마의 아름답고, 멋진 작품들을 전시하여 사람들과 함께 엄마의 열정과 에너지를 공유할 것이라 말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엄마는 그 때까지 열심히 그림을 그릴 테니 꼭 그렇게 해달라며 약속을 잊으면 안 된다고 했다. 상상만해도 기분이 좋은지 엄마는 계속 싱글벙글 이었다. 자신의 열정을 바칠 무엇인가를 가진 엄마가, 꿈을 가진 엄마가 참 자랑스러웠다.

 

그림은 엄마 자신의 행복을 의미했다. 결혼 이후, 늘 딸들이 잘 되는 것만 보며 기뻐하던 엄마가 자신의 노력으로 이루어낸 성취를 통해 기쁨을 느꼈던 것이다. 엄마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도 아니고, 유명해지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엄마에게는 그저 그림 그리는 것 자체가 즐겁고, 행복했다. 순수한 열정이 살아 숨쉬었다. 그리고 그렇게 그림을 그리면서, 엄마는 자기 자신을 찾아갔다. 누구누구의 엄마가 아니라, ‘노난희라는 이름 석자로 세상에 우뚝 섰다. 화가 노난희로 새로운 삶을 살았다. 

그림을 그리는 엄마가 좋았다. 엄마가 사진 찍기를 포기했던 것처럼 그림 그리기를 포기하지 않기를 내심 얼마나 빌었는지 모른다. 어쩌면 엄마를 보며 미래의 나를 상상했는지 모르겠다. 엄마의 꿈이 멈추면, 내 꿈도 멈춰질 것처럼. 하지만 엄마의 꿈은 멈추지 않았다. 때로 몸이 안 좋거나, 다른 일이 생겨서 쉬어갈 때도 있었지만, 얼마 후엔 다시금 붓을 들었다. 꿈이 있고, 열정이 있는 엄마를 보면서 나도 힘을 얻었다. 엄마가 멋있고, 자랑스러웠다. 나도 나이가 들면 아이에게 자랑스러울 수 있는, 꿈을 잃지 않는 엄마가 되고 싶다 생각했다.

 

이전 1 2 3 4 5 ... 2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