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남미로 여행을 떠나고 싶어질 때

Walnut 2021. 4. 17.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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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작가 오소희의 남미 여행 에세이 '안아라, 내일은 없는 것처럼'을 읽고

 오소희 작가님 책을 샀다. 시아가 열 살이라 JB가 열 살 일 때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런데 아이와 둘이 남미로 여행을 갔다니! 나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도전이다. 그런데 글 속의 엄마와 아들의 모습은 읽고 있으면서도 이해가 안 간다. 작가님께 물어보고 싶어 졌다.

 "진짜 JB가 열 살이었던 것 맞나요?"
 "작가님 글을 어떻게 이렇게 잘 쓰시나요?"
 "여행의 순간순간을 어쩜 그렇게 아름다운 어휘들로 표현하셨나요?"

 감탄. 또 감탄. 가볍게 읽을 여행 에세이일 줄 알고 펼친 책 속에서 인생 구절들을 만나며, 남미의 역사를 생각해보며, 문장 하나하나 마음속에 꾹꾹 새기며 읽어 내려갔다.

'모두가 인류사에 길이 남을 건축물을 지을 필요는 없다. 새로운 사조의 창시자가 될 수도 없다. 정복 같은 건 더더욱 할 필요가 없다. 그저 나무를 심어라. 그저 꽃에 물을 주어라. 그저 자식을 낳아라. 나이를 먹으며 약간의 지혜를 얻거든 어린 이들에게 물려주어라. 그로써 그들이 살아갈 세상이 조금 더 나은 세상이 될 발판을 닦아 놓아라. 다음에 올 사람을 위해 떠나는 방의 쓰레기통을 비워놓듯이. 지금 네가 머무르는 곳에 앉아라. 곁에 있는 사람의 입을 맞추고 사랑을 속삭여라. 죽을 때 후회되지 않을 만큼 사랑해, 사랑해, 그리고 또 사랑해 속삭여라. 이유를 묻지 말고 안아라. 내일을 생각하지 말고 안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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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다가... 기분이 이상했다. 우울해졌다. 사막, 바예스타스 섬, 수없는 새들, 마추픽추, 티티카카 호수, 산악 사이클, 아마존 강, 악어, 돌고래. 다 내 마음속에 없던 것들이었는데, 갑자기 깊숙이 들어왔다. 하지만 멋들어진 자연과 훌륭한 유적지가 마음을 후빈 것은 아니었다.

 사람이었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 3분의 1이 웃음을 짓고 있다던 볼리비아 사람들. JB가 육교 위에서 바이올린을 켤 때 그 앞에 모여서 음악을 듣던 사람들. 함께 버스를 탔던 사람들. 아마존 강 로지에서 함께 추억을 나누던 사람들. 강에 뛰어들던 사람들. 장난치던 아저씨. 볼리비아 시내 악기를 가르쳐주던 히로... 그랬다. 여행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함께 했던 사람들이었다.

 코로나로 이동을 하지 못한 지 오래되었다. 한 동안은 하늘길, 버스 모두 막히기도 했다. 과연 이러한 이동 제한이 언제 돌아올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이동제한이 한창일 때 이 책을 읽었는데, 책을 읽다가 문득, 사람들이 사무치게 그리워졌다.

 젊은 날, 여행을 다닐 때는 모르는 사람과도 이야기하고, 친구가 되고 그랬었다. 그게 참 좋았는데. 지금은 모두 마스크를 쓰고, 혹시나 누군가 바이러스에 걸렸지 않았을까 걱정하고, 가까운 이웃조차 마스크를 쓰고 만난다. 이로써 우리는 우리를 서로 보호하는 것임을 아는데도 슬퍼졌다.

 손을 맞잡고, 어쩌다 침도 튀기고, 때로는 안아주던, 모르는 사람에게도 따뜻한 손을 내밀던 그런 때가 다시 올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남편에게 부탁해 외출을 했다. 아주 오랜만의 외출이었다. 역시 바깥공기는 달랐다. 차를 타고 콘도 밖으로 나가는 동안 아이들은 마치 처음 차를 타보는 사람처럼 신이 났다. 방지턱만 지나가도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소리를 지르고 손뼉을 쳤다. 매일 보았었던 창 밖의 풍경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아이들은 그마저도 처음 보는 풍경처럼 쉴 새 없이 재잘댔다.

 나뭇잎은 여전히 바람에 흔들리고, 작은 참새도 나뭇가지에 앉았다. 마스크를 쓴 운전자들이 운전을 하고 있다. 아... 그래도 사람들이 여전히 이 세상에 함께 있구나. 많은 곳이 문을 닫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구나. 이렇게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외로웠던 마음이 사라진다.

 다시 마스크로 얼굴을 덮고 집으로 돌아왔다. 한동안은 또 집에서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혼자인 듯 하지만 나는 혼자가 아니다. 오늘 나는 약해진 마음을 충전하고, 사람들과 서로 마주 보고 웃으며 얘기할 수 있는 그날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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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5월 14일.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 가족들과 밥을 먹으면서 자꾸 책 얘기를 하게 된다.

"여보, 남미가 생각보다 엄청 매력적인 나라였네. 우리도 나중에 콜롬비아랑 볼리비아 가볼까?"
"몰랐어? 난 진짜 남미 가보고 싶어. 예전에 아마존에 가려고 했는데 결국 못 갔잖아. 나중에 가보자."
"있잖아, 브라질은 생각보다 잘사는것 같아. 거기 우리나라 동대문 같은 곳이 있는데, 그 곳을 운영하는 사람 70프로가 한국사람이래. 한국 사람이 브라질에 그렇게 많이 사는 줄 몰랐어."
"그리고 있자나 볼리비아 물가가 진짜 싸데. 여기보다 더 싼 거 같아."

 밥 먹는 내내 남편에게 책 이야기를 한다. 언젠가 콜롬비아 커피를 산지에 가서 먹는 상상을 하며. 책의 마지막 빌라 데 레이바를 떠나며 그녀가 만난 자연의 모습이 또다시 마음에 와 박힌다. 인생에서 중요한 게 무엇인가. 오늘도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이 그림이다. 지금 내가 있는 이 곳에서, 문득 모든 것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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