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오소희 '그러므로 떠남은 언제나 옳다' 남미 여행에세이

Walnut 2021. 4. 19.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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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하는 인터뷰 형식으로 풀어보는 책 리뷰!
오소희 작가의 남미 여행 에세이, '그러므로 떠남은 언제나 옳다'를 읽고

Image from 교보문고

혼자 하는 인터뷰😄

1Q. 소희 언니가 아들 중빈과 떠났던 ‘남미 여행’ 같은 모험을 본인은 떠날 수 있을까요?

A. 저 잠시만요.. 심호흡 좀 하고요. 후우.... 
그건 정말 정말이지, 정말 정말로 아주 많은 마음의 준비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하하; 

 소희 언니가 아들과 떠났던 여행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여행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가 나무 구멍 안으로 갑자기 풍덩 빠져 버린 후 일어나는, 혹은 ‘나니아 연대기’에 나오는 네 명의 아이들이 옷 장 속으로 들어가 일어나는 신비한 마법과 모험이 난무하는 그런 여행이었던 것 같아요. 

 특히 극적으로 시작해서 극적으로 끝났던, 에콰도르의 한 카카오 농장 여행을 읽는데 얼마나 손에 땀을 쥐었는지 모르겠어요. 농장이 어딘지도 모르고, 저녁 늦게 도착한 푸에르토 키토는 숙소도 찾기 힘들었지요. 희미한 간판을 보고 들어간 숙소는 완벽하게 더러운 10달러짜리 방이었어요. 문은 잠기지도 않고, 창문은 열리지도 닫히지도 않고, 침대에는 개미가 기어 다녔데요. 머리카락과 흙이 널브러진 화장실의 깨어진 변기는 물도 내려가지 않았다고 하네요. 그런데도 소희 언니는 아들과 그곳에서 하루를 머뭅니다. 다음날, 사람들에게 묻고, 묻고, 또 물어 초록이 무성하고 아름다운 기예르모의 농장에 도착합니다. 

 기예르모 농장을 묘사한 부분은 너무 좋았어요. 농장에는 카카오, 파파야, 오렌지, 레몬, 파인애플, 귤, 향수의 원료가 되는 꽃, 약재가 되는 열매 등 수많은 싱싱한 열매들이 가득했습니다. ‘녹음과 원색, 향기와 기기묘묘한 냄새, 신맛과 달콤함 사이를 걸었다.’ ‘그 어떤 마음의 상실을 품은 사람이라도 기예르모의 농장과 정원을 걷노라면, 점차 자연스러움과 풍성함의 세계로 흘러들 것이다. 조금씩 상처가 잊히고 허한 곳이 메워질 것이다.’ 이렇게 말하던 소희 언니는 산책 중 조리를 신고 나서는 바람에 개미 떼를 잘못 밟아 발등을 습격당합니다. 발등이 붉어지고, 퉁퉁 붓고, 간지러운데도 언니는 말합니다. ‘그래도, 나는, 그저 좋았다.’ 언니의 초긍정 마인드에 두 손 두 발 다 들고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뒤이어 반전까지 있으니 기회가 되시는 분들은 책을 통해 이 모험의 끝까지 함께 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아타카마 사막에서 펼쳐진 모험도 만만치 않아요.

 솔직히 저를 밝히면, 저는 불확실한 것을 좋아하지 않고, 벌레도 좋아하지 않고, 무엇보다 용기가 부족하거든요. 살면서 모험을 거의 안 해본 것 같아요. 제가 모험이라 말했던 것들도 사실은 모두 안전장치를 만들고 했던 것들이었어요. 젊은 날, 생애 첫 유럽 여행도 안전한 도시들만 골라 다녔었고요, 지금 말레이시아에 살고 있는 것은 순전히 저희 남편이 없었다면 못했을 거예요. 그러니 소희 언니가 했던 ‘남미 여행’ 같은 여행은 저에게 아주 큰 용기가 필요로 하는 일이에요. 하지만 ‘안아라, 내일은 없는 것처럼’, 그리고 ‘그러므로 떠남은 언제나 옳다’ 두 여행기를 읽으면서 어려움 속에서도 늘 뚜벅뚜벅 앞으로 나아가는 언니의 긍정적인 모습을 보면서 용기를 많이 얻었습니다. 

2Q. 책을 읽고, 남미에 대한 인상이 바뀌거나, 새로 알게 된 점은 무엇인가요?

A. 남미는 지리적으로 멀어서인지, 생각해 볼 기회가 많이 없었어요. 아마존, 마야 문명 혹은 아즈텍 문명 등 고대 문명이 있던 곳, 축구 등이 떠오르네요. 보통은 정치적으로 불안한 곳, 그리고 위험한 곳이라는 인상이 강했었어요. 

 하지만 이번 기회에 알았죠. 자유분방하고, 사랑이 넘치고, 밝은 웃음을 지닌 사람들도 그곳에 있다는 것을요. 그리고 그 뒤에 드리워진 사회의 어두운 면까지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따뜻함이 식을 새가 없었다던 콜롬비아. 사랑스럽기만 할 듯한 그곳의 사람들은 항시 철문을 걸어 잠그거나 곳곳에 군인과 경찰이 깔려있는 불안한 치안 속에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콜롬비아의 복잡한 지형, 효과적인 제도의 부재와 약한 정부로 인하여 무법, 무국적 상태가 오래 지속되었던 것입니다. 납치, 총기 살인, 테러가 90년대를 휩쓸었고, 국가의 유력 대통령 후보가 납치되는 사건마저 벌어졌습니다. 소희 언니가 여행하던 2010년 9월에도 곳곳에서 폭파 테러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2019년 콜롬비아 뉴스를 보니, 선거 관련하여 정치테러가 극심하다고 하니 여전히 정치적 불안이 계속되고 있는 듯합니다. 정치불안으로 그곳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시민들이 얼마나 불안할지 씁쓸한 마음이 드네요. 그럼에도 그들은 여전히 따뜻하고, 사랑이 넘치겠지요!

 에콰도르의 수크레 숙소에서 만난 에일린이라는 친구로부터 ‘글로벌 케어 체인’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의 어느 가정에서 육아도우미를 고용하면, 그들의 자녀는 또 다른 지역 육아도우미의 도움을 받겠죠. 이렇게 양육 사슬이 계속되면 결국 마지막 단계에는 돌봐줄 사람이 전무한 아이들이 남게 된다고 합니다. 에콰도르의 11퍼센트에 해당하는 150만 명이 스페인, 미국 등에서 일하고 있는데 이들의 자녀들이 결국 양육 사슬의 말단에 남겨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에콰도르에는 함께 살지 않는 가족이 많고, 같이 살더라도 기혼녀의 80퍼센트가 남편의 폭력을 견디며 살아간다고 합니다. 마음이 참 아팠습니다. 

 소희 언니는 여행 도중 17살에 결혼하여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며 네 아이를 키우는 무뚝뚝한 엄마 카롤린의 엄마와 그녀의 네 아이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러한 가정환경 속에서 자란 아이들은 늘 사랑에 굶주려 있지요. ‘일부만’ 뿌리 뽑아 떠난 이민자들의 남겨진 뿌리가 겪는 고통, 그것이 에콰도르의 아이들이 겪는 고통일 거라고, 언니는 말합니다. 

 밖에서 보이는 어른들의 싸움, 정치적 혼란함, 생계를 위해 떠나는 사람들, 그리고 무너지는 가정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그곳의 아이들은 자랍니다. 자신의 감정을 감출지언정 동생들을 살뜰히 보살피며, 낯선이에게도 따뜻한 웃음을 건네며 말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남미의 유적지, 박물관, 농장, 사막 등 관광을 했던 장소보다도 그 곳 사람들의 밝은 모습과 어두운 사회의 면들이 마음에 깊이 새겨진 것 같습니다. 

3Q. 에콰도르 오타발로의 콘도르 공원 내용을 읽으면서 새로운 결심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결심을 했나요?

A. 콘도르 공원은 멸종 위기에 처한 안데스 콘도르 포함, 다양한 맹금류와 부엉이나 올빼미를 보호하는 야생조류들의 안식처입니다. 세계 각지에서 기부받은 희귀한 새들과 사냥꾼에게 포획되었다가 구조된 새들을 보호하고 있는데, 구조된 새 중 건강한 것은 바로 자연으로 돌려보내고 다친 새는 치료하여 되돌아 갈 수 있도록 돕습니다. 이 곳을 운영하는 이는 에콰도르 사람이 아닌 네덜란드인이었습니다. 그는 2002년 극심한 사냥과 벌채로 망가져가는 에콰도르의 자연을 보며 뭔가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네덜란드 대사관의 후원을 받게 되었고, 새들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환경보호 및 지역개발과 연계된 활동까지 하고 있었습니다.

 ‘제3세계를 여행하다 보면, 그곳을 식민지로 망쳐놓은 것도 서구 열강들이지만 그곳을 더 낫게 하기 위해 고민하는 사람들도 종종 같은 곳에서 온 이들이다. 그들은 자신이 머무는 장소와 사람과 문화에 진득한 애정을 지니고 오랜 시간에 걸쳐 지역사회를 변화시킬만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책의 이 부분을 읽는데, 해외에 살고 있는 저의 모습이 겹쳐졌습니다.

 물론 저희는 그냥 이 곳에 이주하여 살고 있지요. 사는 내내 저와 남편은 이 곳의 자연환경과 사람들로부터 매일 많은 혜택을 받고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것도 한 것 없이 말이에요. 종종 이 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여기에서 사는 게 어떠냐고 물어보면, 늘 이곳에서 사는게 참 좋고, 이 곳을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도 우리만의 콘도르 공원을 이 곳에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당장은 아니어도요. 이 곳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꼭 하리라고 다짐해봅니다. 


4Q. 소희 언니는 갈라파고스섬 여행을 포기하고, 페구체의 학교 카스카다에서 일주일간 아들과 자원봉사를 했습니다. 인생 처음으로 간 남미 여행, 다시 못 올지도 모르는 여행에서 본인도 그런 결심을 할 수 있겠습니까?

A. 저는 이 부분이 정말 감동이었고, 이 스토리가 너무 궁금해 이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소희 언니의 여행에는 늘 자원봉사가 들어가거든요. 저는 부끄럽게도 순수한 ‘자원’ 봉사를 해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이 또한 늘 두려워했었어요. 

 그래서 소희 언니는 아들과 함께 어떻게 봉사활동을 했을까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너무 쉽게 이루어지더라고요. ‘나 봉사활동하고 싶어.’ 이 한마디면 되는 거였어요. 소희 언니는 영어를 가르치고, JB는 아이들에게 바이올린을 연주해주고, 또 가르쳐주기도 했지요. 여행 사진 속에 갈라파고스의 동물들은 없었지만, 그곳에서 만난 예쁜 눈망울을 지닌 인디오 아이들이 가득했습니다. JB는 어릴 때부터 나눔을 온몸으로 익히고 있었습니다. 저는 나눔을 너무 거창하고, 어려운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지금은 코로나로 아무런 활동도 할 수 없지요. 이 시간 동안 몸과 마음과 머리를 잘 준비하여, 사람들을 마음껏 만날 수 있는 날, 이전보다 더 사람들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또 다짐해봅니다. 

 그래서, 갈라파고스 섬이요? 갈라파고스 섬에도 가고, 봉사활동도 하면 안 되나요?^^

5Q. 이번 책에 나온 여행지 중, 가장 가고 싶은 곳은 어디인가요?

A. 콜롬비아 마니살레스의 커피 농장, 에콰도르 푸에르토 키토의 기예르모의 카카오 농장, 그리고 볼리비아의 아타카마 사막이요. 자연 앞에서 인간은 늘 겸손해집니다. 그리고 자연의 축복을 온몸으로 느끼는 것은 늘 기쁘고 벅찬 감동을 선사합니다. 소희 언니가 보았던 초록의 묵직함을 느끼게 해 줄 농장도 보고, 잊을 수 없는 콜롬비아 커피도 현지에서 먹어보고 싶어요. 추운 사막의 밤도 잊게 해줄 아름다운 빛깔의 호수들도 보고 싶습니다.   

6Q. 책을 다 읽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무엇이었나요?

A. 책을 덮으면 소희 언니가 여행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떠오릅니다. 책 마지막에는 여행 중 만났던 사람들의 사진이 가득하거든요. 사람을 향하는 소희 언니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책을 읽으며 여행을 따라가다 보면, 불가능해 보이는 많은 일들을 홀몸도 아닌 아이까지 데리고 해내고 있는 한 여인이 보입니다. 그 안에는 담대함, 때로는 무모함도 있지만, 늘 사랑이 녹아있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고 나니, 중간중간 몸에 좋은 쓴 맛이 나지만 결국엔 달콤한, 사탕 한 알을 먹은 느낌이에요.    

7Q. 여행이란 무엇일까요?

A. 젊을 때 홀로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습니다. 대학원에 들어간 지 2개월 만에 휴학을 하고, 방황했었어요. 우물 안 개구리 같았던 제 자신을 세상 속에 던져보고자 여행을 떠났습니다. 소희 언니처럼 더 큰 모험과 도전은 하지 못했고, 독일, 스위스, 프랑스의 안전하다는 도시만 골라 다녔어요. 그럼에도 저에게는 정말 큰 도전이었어요. 진로로 방황하던 큰 딸이 홀로 유럽을 간다니 말리지도 못하고, 제가 비행기를 타던 날 저희 부모님은 시골집 거실에서 밤새 잠을 뒤척이셨대요.

 그때가 2005년이었어요. 벌써 1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네요. 프랑크푸르트, 뮌헨, 취리히, 루체른, 파리 등 유명한 도시의 이름들은 기억하지만, 제일 처음 머물렀던 숲 속의 캠핑장 이름은 단어 하나 기억이 나질 않네요. 그 때 만났던 친구들 이름도.. 마그다와 이븐만 기억나고, 사라졌네요. 

 하지만 잊히지 않는 순간들은 15년이라는 세월 속에서도 지워지지 않고 선명히 떠오릅니다. 첫날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내려, 인터넷에서 뽑아온 지도와 가는 방법을 적은 종이 하나 들고 여행을 시작했어요. 버스를 타고, 또 타고, 낯선 숲 속 마을 앞 정거장에 내렸을 때였어요. 같은 정류장에서 내리는 한 엄마와 어린 아들을 만났어요. 제가 가는 곳을 보여줬더니 길을 알려주겠다고 했습니다. 갑자기 하늘에서 보내주신 천사 같았어요. 덕분에 그들과 함께 숲을 걸었습니다. 표지판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던 숲 속 길이었어요. 제 키의 열 배는 될만한 곧은 나무들로 빽빽한 숲 길 안쪽에 제가 찾던 캠핑장이 있었어요. 두 모자에게 너무 고마워 혹시나 하고 들고 갔던 한국 기념품을 바로 꺼내어 주었지요.

 그 캠핑장에서 2주간 머무르며 봉사활동을 했는데, 아직도 그때 함께 했던 친구들의 얼굴이 눈에 선합니다. 영국, 폴란드, 핀란드, 일본, 우크라이나, 독일 등 여러 나라의 친구들과도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처음으로 느꼈던 것 같아요. 그 후 홀로 여행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났어요. 제가 지도 한 장 들고 반대 방향으로 길을 걸으며 헤매고 있으면, 어디선가 사람이 짜잔 나타나 도와주고는 했어요. 기차를 타고 가는 길에, 혹은 기다리고 있는 동안 중동 사람, 인도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기도 했었어요. 그 길에서는 굉장히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지요. 

 소희 언니의 남미 여행책을 읽다 보니 이렇듯 제가 예전 여행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씩 떠올랐습니다. 여행은, 사람들과의 만남으로 시작되어 헤어짐으로 완성이 되는  행복한 여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떠남은 언제나 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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