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엄마의 20년 / 오소희 / '엄마'가 아닌 '나'로 세상에 서 있게 해준 책

Walnut 2021. 5. 14.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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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되면서 나는 퇴직을 했다. 그리고 어느새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아이를 키우는 내내 불안했다. 내가 아이를 잘 키우고 있는 것인지 모를 때가 많았고, 사회에서 점점 낙오되는 기분도 들었다. '엄마'가 되면서 '나'를 점점 잃어가는 기분이었다.

아이가 어릴 때는 밤잠을 설치며 배고프거나 잠 못 드는 아이를 위해 늘 대기해야 했고, 밤새 방 안의 온도가 괜찮은지, 이불은 잘 덮었는지 수시로 체크했다. 낮에는 끊임없는 집안일과 아이들 보는 일에 지쳐 우울에 빠지기 일수였다. 아이에게 화내고 나면, 화낸 내가 밉고 아이에게 미안하여 또 울기도 했다. 나의 밑바닥을 얼마나 많이 마주했는지 모르겠다.

Image from Yes24


'엄마의 20년'은 작년 하반기쯤 읽었다. 그런데 당시 책을 읽은 후, 후기를 쓸 엄두가 나지 않았다. '엄마'로서 살아오느라 챙기지 못한 '나' 자신에게 충격을 받았다고 해야 할까. 사회가 가진 편견을 고스란히 안은 채, 또 '나'를 잃은 채 살아온 내 삶이 조금은 허망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나름 엄마로서, 아내로서 가정에 충실하고, 가정을 잘 꾸려가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늘 불안하고 우울했다. 남편도 내가 그런 감정에 휩싸일때면 힘들어했다. 해결할 수 없다 생각했고, 체념하고 내려놓으며 살아가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런데 그 불안하고 우울했던 지점의 이유를, 마치 한의원에서 맥을 짚어 아픈 곳을 찾아내듯이, 책에서 딱 잡아 주었다.

책을 펼치면 처음에 '엄마의 20년'이 한 편의 시로 등장한다. 이 시를 유튜브에서 영상으로도 볼 수 있다. https://youtu.be/y2mzW4o55gE 이 영상은 '언니 공동체' 언니들이 낭독하고, 제작한 것이다. 이 시를 정말 많이 읽었는데, 읽을 때마다 가슴이 뜨거워진다. 특히 아래 두 부분이 흔들리던 내 마음을 꽉 붙잡아 주었다.

"만약 네가 세상의 잣대로 못하는 아이라도
나는 크게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엄마인 내가 그 누구보다 너만의 장점을 잘 알고 있으니,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장점으로 생을 일구는 법을 배우게 되어 있으니,
유사 이래 내내 그래 왔으니,
시절의 겁박에 새삼스레 오그라들어
너를 들볶지는 않을 것이다."

"믿으면서,
너를 믿으면서,
너를 믿는 나를 믿으면서,
나는 담담히 내 세계를 가꾸고 있을 것이다.

네 인생이다."

아이가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아이의 학업이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익히도록 한다며 한글도 미리 안 가르치고, 수도 따로 안 가르쳤다. 심지어 해외 이주를 하다 보니 아이는 영어가 언어인 환경에 놓이면서 모든 부분에서 또래 아이보다 느렸다. 아이가 아직 어린데도 성적표를 볼 때마다 불안했다. 다른 사람들처럼 어릴 때부터 공부를 가르쳐야 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휩싸이기도 했다. 때때로 아이를 다그치고,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는 듯해 보이는 아이가 미워지기까지 했다. 그러다 정신 차리고 아이의 속도를 믿고, 기다려주자 다짐하기를 반복하는 나날이었다. 그때, '엄마의 20년'을 읽었다면, 나는 더 빨리 반성하고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으리라.

"우리가 할 일은 그저 아이가 어느 길로 가든 새 세상에서 잘 살 수 있는 기본 연료를 공급해주는 일뿐입니다. 어릴 적부터 아이에게 충분한 사랑과 칭찬을 주고, 찬찬히 인성의 빈 곳을 메워주고, 온 가족이 함께 운동과 여행 같은 풍요로운 직접 체험을 하고, 책과 영화 같은 다양한 간접체험도 하고, 그 다채로운 가족문화 속에서 아이가 능동적으로 적성과 진로를 찾아 움직이도록 응원하는 일. 사실 이것이 본래 참된 부모의 역할이지요."

"좀 막살아도 됩니다. 안 죽어요. 어른들이 지금 당장 정해진 걸 안 하면 사회에서 낙오된다고 여러분들에게 겁을 주었죠? 순서 같은 건 뒤죽박죽 돼도 괜찮아요. 남보다 늦어도 괜찮아요. 다음 두 가지만 전제로 한다면. 남들이 시키는 대로가 아닌, 내 식으로! 잠깐 하다 마는 것이 아닌, 꾸준히!"

책을 읽으며, 부모로서의 나의 역할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고,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세상을 살아가리라 다시금 다짐하였다.

그리고 남편과의 관계에서 내 뜻대로 되지 않아 힘들었던 점도 알게 되었다. '가부장적 사고'가 내 안에 깊이 뿌리 박혀 있었고, 아이를 낳은 후에는 더더욱 남편 의존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무엇인가 일이 잘 안 풀리면 남편 탓을 할 때가 많았고, 남편이 하지 말라고 하는 것들은 안 하게 되면서 마음 안에 불만이 꽁꽁 묶여 있었던 것이다. 사실 문제는 남편이 아니라 사회의 가치 속에 길들여진 나의 생각 속에 있음을 깨달았다. 주체적인 삶을 살기로 결심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 과정 속에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어머니의 역할 역시 '그 아버지들의 아내들'로부터 가져오면 안 된다는 것을 적극 깨닫지 못하는 걸까요? 남편들만 변화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아내들도 변화해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는 알지 못했어요. 우리가 스스로 새로운 성역할을 알아내야만 하는 운명이라는 것을. 미투 운동도, 올바른 명절문화도, 가사분담도, 좋은 엄마의 새로운 정의도... 바로 지금 우리가 끊임없이 고민하고 판단해서 재정립해야 한다는 것을."

아이와 남편을 돌보느라 관심 두지 못했던 '나'를 찾으라고 저자는 말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육아, 균형 잡힌 육아를 위해 전진하라. 잃어버린 '나'를 찾는 것이 그 시작일 것이다.' 그리하여 그녀는 '나를 찾는 법' 15가지를 알려준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몇 가지 방법을 적어 본다.

▷ 써 붙이자. '내 인생은 나의 것, 애 인생은 애의 것.'
'활동'을 찾자, '나'만의 속도로. - 지속이라는 연료가 더해지면 반드시 'THE 가치'라는 종착지에 도달하게 되어 있다.
▷ 장애물은 그냥 밟고 가자. - 우리는 남에게 성과를 내보이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행복하기 위해 존재한다.
'꾸준히' 하기 위해 활동 공동체를 만들자. - 꾸준히 운동하면 내 몸이 좋아질 것을 믿듯이 꾸준히 활동하면 내 인생이 좋아질 것을 믿으며, 꾸준한 인간은 반드시 배우고 성장한다는 것을 믿으며, 꾸준히.
가족의 '다름'을 정중히 인정하자. - 느긋한 아이를 재빠른 아이로 바꿔 놓으려 들거나, 승부욕 없는 아이에게 이기고 돌아오라 다그쳐봐야 서로 피곤해질 뿐이라는 걸, 이미 잘 알고 있다. 나는 내가 나를 존중하듯이, 있는 그대로의 아이를, 아이의 능력과 개성과 한계를 존중할 것이다. 절대 성적 분리불안에 걸려 아이 성적을 내 성적으로 동일시하는 어리석음 같은 건 범하기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말한 엄마의 의미를 다시금 마음속에 되새겨본다.

"본래 엄마란, 삶의 가치와 태도를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그로써 평생 아이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는 존재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엄마의 역할입니다."

Photo by Ryan Moreno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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