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떠나지 않고도 행복할 수 있다면 / 오소희

Walnut 2021. 9. 3.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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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챕터, 한 챕터 읽으며
나의 욕망을 들여다본다.

비를 흠뻑 맞으며 오토바이 타는 그녀,
잘못된 길인 줄 알면서 발을 내듣는 그녀,
이끼낀 뿌연 수영장 물에 풍덩 뛰어드는 그녀를 보면서.

그 자유로움과 용기는
많은 날동안
내가 피하던 것들이었다.

 

정답과 바른 길만 찾으려 애쓰던 나는
잘 알지 못하는 곳은 가지 못했고,
오토바이를 홀로 탄다는 것은 상상도 못해봤다.
결정 전에는 수없이 고민했다.
머뭇거리고, 머뭇거렸다.

실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취향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했다.

그녀의 책을 읽으면 생각하게 된다.
나에게 행복이란 무엇인지,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나는 누구인지.

이번 책이 특히 좋았던 것은
그녀의 여행과 일상의 버무림 속에서
시고 달고 쓴 다양한 삶의 철학들을
맛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부암동에 집은 지으며
그녀가 통과했던 고민들이
여행의 한 장면과 만나
살아 숨쉬는 이야기가 되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따라
지구 한바퀴를 돌고 온듯하다.

로마의 백 년 묵은 건물의 옥탑방,
미로 같이 길이 얽힌 콜롬비아의 보고타,
발리 우붓의 요가 수련실,
베지인다 게스트 하우스의 원형 수영장,
유럽의 포장 도로 위,
체코의 플라나 역 부근,
김치찌개를 먹으러가는 우붓의 도로 한 가운데,
페르마타 하티 보육원,
말을 타고 달리는 제주도의 푸른 숲 속,
그리고 다시 지금, 그녀가 머무는 부암동으로.

그렇게 돌고 돌아 온
그녀의 이야기에서
행복은 찾아나서야 하는 것이 아님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매일 달력에 스마일을 그려 넣어도
행복할 수 없던 날들,
떠났다 돌아와도
바뀌지 않았던 현실,
주변의 것들로 인해
불행하다 느끼고,
모든 것이 남의 탓인 듯
무기력했던 날들.
내가 지나온 그 시간들을
보듬어본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따뜻한 햇살 조각에,
창밖으로 보이는 무성한 초록숲과 쨍한 파란 하늘에,
방 한구석에 마련한 나의 책상 앞에,
매일 사랑을 말하는 아이와 남편 곁에,
행복을 둔다.

내 손에서 빠져나갈까봐, 사라질까봐
두려워하지 않고,
그냥 둔다.

어떤 날은 못보고 지나치는 날도 있겠지만,
매일 숨을 쉬듯이, 밥을 먹듯이, 말을 하듯이
우리 곁에 있음을 감사하며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내게 시간이 주어져 있다는 건
언제나 신비롭고 감사한 일이다.
마지막 그날까지,
내가 쟁취한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이기에."

- '시간이란 무엇인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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