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Walnut 2021. 9. 8.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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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강제 수용소에 갇혔던 한 정신의학자의 기록이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제목을 보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관한 책일 것이라 생각했으나, 여러 측면에서 이 책은 죽음을 뛰어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내용은 짧지만 삶의 진정한 의미를 되돌아보게 해 준 인생 책이 되었다.

Image from 교보문고

 

 저자는 사람들과 처음 강제 수용소에 들어가 마자 모든 것을 빼앗겼다. 심지어 온몸의 털도 다 깎이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눈앞에는 가죽 채찍과 가스실이 있었다. 수치심, 모멸감, 절망이 그들을 덮쳤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들은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우리는 우스꽝스럽게 벌거벗겨진 몸뚱이 외에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죽음을 코앞에 둔 강제수용소의 사람들이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말이 가슴을 아릿하게 했다. 이들은 첫날의 충격으로 며칠이 지나면 가스실조차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오히려 가스실이 있다는 사실이 사람들로 하여금 자살로 보류하게 했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는 그저 죽고만 싶을 것 같은데, 오히려 사람들은 살아갔다. 말 그대로 그들은 살아갔다.

구타, 폭행, 죽음이 일상인 그곳에서 사람들은 혐오감, 공포, 동정심과 같은 감정을 더 이상 느끼지 못했다. 모든 것이 무감각해졌다. 이런 무감각한 삶 속에서도 그들은 때로 모멸감이나 분노를 느꼈다. 그러나 그들이 어두움만 느낀 것은 아니었다.

불행 속에 불행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저자는 상상을 통해 그의 아내와 대화를 나누었고, 내적인 풍요와 영적인 자유가 넘치는 세계로 도피할 수 있었다. 그리움뿐만이 아니라 과거의 기억을 통해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해질녘 하늘을 보며 자연의 아름다움에 도취되기도 하였다. '삶에 궁극적인 목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라는 대답을 들었다. 그곳에는 예술 활동도 있었고, 유머도 있었다.

잠들기 전 이를 잡을 시간을 준다는 것에 감사했다는 부분은 충격적이면서 내 삶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나는 정말이지 얼마나 별것 아닌 것들에 불평불만하며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목숨을 부지할 한 조각의 행운뿐이었다.

혹독한 환경인 수용소의 체험으로 수용소에서도 사람이 자기 행동의 선택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저자의 기록은 나에게도 커다란 깨달음을 안겨주었다.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정신적 자유를 잃지 않은 그, 그리고 그곳에서 살았던 많은 사람들의 삶이 나를 다시 부끄럽게 했다. 그보다 훨씬 나은 환경 속에서도 나는 왜 남 또는 환경을 탓하며 살아왔던 것일까. 그는 말한다. "강제 수용소에서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빼앗기지 않은 영혼의 자유. 그것은 오롯이 삶에 대한 자신의 태도와 의지로 결정되는 것이다.

수감자들 중에서 도덕적, 정신적 자아가 무너지도록 내버려 둔 사람들이 결국 수용소 안 타락한 권력의 희생자가 되었다. 반면 충만한 내면의 자유와 시련을 견딘 소수만이 자신을 지켰다. 시련 속에서 오히려 삶의 의미를 찾아냈다는 점이 또 다른 깨달음으로 다가왔다.

"시련을 당하는 중에도 자신이 이 세상에서 유일한 단 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어느 누구도 그를 시련으로부터 구해 낼 수 없고, 대신 고통을 짊어질 수도 없다. 그가 자신의 짐을 짊어지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그에게만 주어진 독자적인 기회이다."

그들은 시련의 의미를 깨달은 후, 시련으로부터 도망가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련 속에 무엇인가 성취할 기회가 숨어 있다고 생각했다. 시련 속에 성취의 기회가 숨어 있다니! 우리는 되도록 시련을 피하기 위해 살고 있지 않은가. 고통을 대면하고, 시련을 받아들일 용기를 지닌다는 그의 말이 삶의 큰 의미가 되어 내게 다가왔다.

이 책을 덮고 내가 오래도록 묵상한 단어는 '삶의 의미'였다. 수용소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은 삶의 의미를 간직한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빅터가 연구한 로고테라피도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노력을 인간의 원초적 동력으로 보고 사람들을 치료한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어떤 어려움도 참고 견딘다.'라는 니체의 말도 기억에 남았다.

나는 오랫동안 삶의 의미에 대해 고민해왔다. 하지만 때때로 내가 뭐라고 삶의 의미씩이나 찾나라는 어리석은 생각도 오래 했다. 위대한 사람들만이 의미 있는 삶을 산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수용소에 갇혀 있던 사람들도 무감각하고 무의미한 날들 속에서 삶의 의미를 생각하며 그 시기를 버티고 살아왔다. 삶의 의미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것이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구체적인 과제를 수행할 특정한 일과 사명이 있다. 이 점에 있어서 그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그의 삶 역시 반복될 수 없다. 따라서 개인에게 부과된 임무는 거기에 부가돼 찾아오는 특정한 기회만큼이나 유일한 것이다."

"인간은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으며, 그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짐으로써'만 삶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오로지 책임감을 갖는 것을 통해서만 삶에 응답할 수 있다."

책을 덮으며 나에게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가 쉽게 화내고 억울해하고 두려워했던 많은 일들이 작게 느껴졌다. 시련을 꼭 겪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시련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세 또한 필요한 것 같다. 시련이 와도 나는 그것에 당당히 맞설 용기를 갖고 있는가? 그리고 나에게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세상이 나에게 주는 질문은 무엇일까? 나는 어떻게 응답할 수 있을까? 나의 삶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여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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